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사진)에서 백 상무는 주인공 김 부장에게 이렇게 외친다. “너는 인마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일하는 기분을 내고 있지.” 이 한마디는 오늘날 많은 조직이 겪는 문제를 정확히 짚는다. 많은 조직에서 연말 성과평가 항목을 초과 달성하고, 혁신 과제 성과를 발표하고, 인공지능(AI) 도입으로 업무 효율성이 30% 이상 향상됐다고 외친다. 하지만 회사 환경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우리는 가짜 일에 빠져 진짜 일을 놓치고 있다. 이런 가짜 일들이 지속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즉문즉답 문화는 가짜 일이 생기는 대표적 원인이다. 상사에게 보고할 때 질문에 바로 답을 못하면 실력이 없어 보일까 봐 다양한 질문에 대비해 방대한 자료를 준비한다. 한 장짜리 보고서에 첨부 자료가 수백 장인 경우도 흔하다. 보고를 받는 사람은 보고와 무관한 질문, 혹은 아주 세세한 질문을 삼가야 한다. 보고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 궁금하면 보고가 끝난 후 별도로 자료를 요청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즉문즉답을 잘한다’와 ‘일을 잘한다’가 동일하다는 오해가 불필요한 가짜 일을 양산한다.
‘파킨슨의 법칙’이 만든 조직의 역설도 한 이유다. 영국 역사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영국 해군 조직을 관찰하며 다음과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1914년부터 1928년까지 영국 해군의 함정은 약 67% 감소했고, 장병은 약 31.5% 줄었다. 같은 기간 전투와 무관한 해군 행정 인력은 오히려 78% 증가했다. 파킨슨은 이를 바탕으로 “일은 주어진 시간을 모두 채울 때까지 팽창한다”는 ‘파킨슨의 법칙’을 제시했다. 즉 일이 많아서 바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일이 불필요하게 늘어난다는 조직의 역설이다.